목동, 빌리다

아아 저질렀다.
목동 야구장, 그러니까 히어로스 홈구장을 통으로 빌려버렸다.
바로 내일.
빌린 김에 대회도 연다.
뭐 나야 예술인은 아니지만 이름은 거창하게.
제 1회 예술인 야구대회.
내가 속해 있는 구인회랑 야구하는 음악인 록커스랑 사진찍는 사람들 무스랑 고전문학 연구하는 올드이글스랑
이렇게 네팀이 토너먼트로 아침 8시부터 시합한다.
그런데 제기랄
목동까지 하루
나의 목표 주전 3루수까지 두 걸음 반 남았는데
지난 일주일동안 두 번의 교통사고.
시큰거리는 발목.
아무리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는 몸이라지만
눈물만 주룩주룩이다.


by 감정의폭주족 | 2009/12/05 08:53 | 트랙백 | 덧글(12)

그러고 산다

1.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평일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와 야구하러 다닐 줄은.
뭐 그 덕분에 주말마다 출근 해 원고를 보고 있긴 하지만.

나도 내가 그럴 줄은 몰랐다.
목동 우중간을 가르는 싹쓸이 2루타를 칠 줄은.
뭐 물론 야구공에 정통으로 맞는게 얼마나 아픈지 다음 타석에 바로 알았버렸지만.


2.
야구 하고 원고 보고 회의 하고 그러다 가끔 술마시고
그러고 산다. 살아낸다.
그러다 어제는 장사익의 노래를 바로 3m 앞에서 라이브로 들었다. 엊그제 정재열의 재즈기타 콘서트를 보러 가자는 친구의 말에
재즈기타야 내 알바 아니라고 말했더니 게스트가 장사익이란다. 
근 7,8년 만에 듣는 장사익의 생목소리. 꽃구경은 비록
못들었지만 님은 먼곳에를 부르는데 눈시울이 젖는다. 슬픔이 곤두선다.
출근하자마자 장사익, 안숙선 합동 콘서트를 예매했다. 그런데 아뿔싸!
꽃구경을 안 부른단다. 그래도 찔레꽃과 국밥집이 어디냐고 위안을 삼아보지만
아무래도 12일 성남 아트센터 공연을 가야만 할 듯싶다.
야구를 하러 새벽에도 나오는 놈이 듣고 싶은 노래 들으러 성남 간다고 누가 흉보겠냐만은
나 혼자 돌아올 길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by 감정의폭주족 | 2009/11/11 18:11 | 트랙백 | 덧글(20)

어느 출판인의 하루

1.
출근.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마신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그는 낯설어한다. 그의 컴퓨터 모니터가 아닌 것 같다. 이런 젠장. 바탕화면이 깔끔하다. 그는 투덜거린다. 자고로 바탕화면이란 수많은 문서와 그림파일과 폴더로 모니터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어야 정상이...아 네 편집장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아니 별말씀을. 자 그럼 작업문서 폴더를 열고 일을 시작해...응? 그가 못보던 폴더가 바탕화면에 떠있다. 이게 뭐지. 
폴더엔 이런 이름이 붙어 있었다. 야구인의 길. 

2.
야구인의 길이라. 뭐 물론 요즘 그가 야구에 빠져있긴 하다. 야심차게 2년간 준비한 새 브랜드의 첫 소설도 야구이야기고 그 브랜드의 심혈을 기울여 기획하고 있는 책도 야구 관련 에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야구인이라니! 그는 엄연한 에디터고 출판인이고 기획자인데.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하기엔 이미 늦었다. 10월 31일부터 11월 29일까지 그가 낼 책은 많아야 두 타이틀. 그런데 그 기간동안 그가 출전할 공식적인 시합만 10 게임이다. 거기다 그의 보직은 행정처리까지 해야 하는 구단주. -_- 시합의 대부분이 주말에 집중되어 있기는 해도 한달에 10게임이면 프로야구 비주전 선수의 출전 경기수 보다 많다. 

3.
그래 솔직해지자. 그는 야구를 좋아한다. 심지어 이번 금요일, 토요일에도 시합이 있다. 금요일 경기는 무려 선발 3루수 출전. 그것도 그의 사무실에서 가까운 난지 제 1구장! 그의 볼에 발그레 홍조가 오른다. 그는 뿌듯하다. 며칠 전 감독님이 밥 값 내신다고 할 때 확 밀치고 낸 보람이 있었으니까. 이제와 이야기하는 거지만 그는 구장 적응 훈련도 할 겸, 실전연습도 할 겸 지난 화요일 날 난지에서 하는 시합에 용병 3루수로 출전했었다. 남들 다 일하는 오후 두시에. 물론 시합 후 사무실로 돌아와 11시까지 야근을 하긴 했지만 세 타석에 들어서 한번의 안타를 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한다. 하지만 그는 그가 두번의 연속 실책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애써 기억하지 않는다. 

4.
이 날 상대 팀이 아주 재미있었다. 실력은 그의 팀과 비슷비슷. 특히 4연속 실책을 한 상대편 3루수는 정말이지 그 자신을 완벽 카피해 놓은 것 같아 아주 짠했다. 사실 처음 상대팀을 보았을 때 그는 정체모를 위화감을 느꼈었다. 1번부터 9번까지 헬멧 뒤로 흘러내리는 긴 생머리에 불룩 나온 배, 최소 20년은 술과 담배와 차마 이름 붙이지 못할 빈곤 혹은 열정에 찌든 몸을 가진 사람들. 그는 입을 삐죽이며 웃었다. 뭐냐 이 사람들은. 이 대낮에 야구 하겠다고 나와 머리를 휘날리는 꼴이라니. 물론 그는 상대편 팀원 전부가 그를 보고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3회쯤 지났을까? 그는 3루에 진출한 상대편 선수를 바라보다 팀 로고를 발견한다. 어라 저걸 뭐라고 읽지? 록커스? 록커스!

5.
아니 록커가 야구를 해? 헤이 록 중년! 그래, 그래 당신 말이야. 록 스피릿이란 말이지. 모름지기 모든 것을 초월하고 공 하나하나에 가슴 졸이지 않고 오후 2시쯤엔 편의점 파라솔 아래 앉아 인생과 여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단 말이지. 그런데 여기서 기타 대신 배트를 휘둘러? 이봐 당신들 정말 록커 맞아? 물론 그는 묻지 않았다. 절대로 상대편이 이나중 탁구부에 나온 이자와를 닮아서는 아니었다.  단지 그는 3루 수비에 집중해있을 뿐이었다.

6.
수요일. 그는 하루종일 찜찜했다. 그가 그 찜찜함의 원인을 알아 차린건 저녁 7시 경, 단골 네일 샵 원장님에게 두 손을 가지런히 내밀고 큐티클을 제거하고 있을 때였다. 찜찜함의 원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10월 31일 경기 후 다음 경기인 11월 11일 야간 경기까지 공백이 너무 길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공식 경기가 열 경기가 아닌 아홉 경기 였다는 것. 찜찜함의 원인을 알아낸 이상 해결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10월 31일과 11월 11일 중간쯤에 경기를 하나 더 잡으면 되니까. 물론 그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실 며칠  남지 않은 일정으로 구장을 빌리고 경기를 매치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휴대전화 목록에 있는 수많은 구장 관리자들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7.
한 손은 원장님에게 맡긴 채로 그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11월 7일이나 8일 구장을 쓸 수 있겠느냐. 물론 대부분의 구장은 이미 예약이 되어 있었다. 보통 구장의 예약은 전달 20일에 시작, 당일 안에 다 결정 된다. 그러니 월말에 가까운 지금 구장을 구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 하지만 지금과 같은 날을 대비 해 그는 그간 수많은 안부전화와 안부문자를 보냈었다. 빈 타임이 나면 먼저 좀 연락 달라고. 입금은 바로 해드리겠다고. 그래서인지 몇몇 관리자들은 은밀하게 15일쯤 그에게 연락을 한다. 다음 달 이런저런 타임이 비는데 사용하겠냐고. 다행이다. 구장을 구했다. 11월 7일 오후 풀 타임. 

8.
구장을 구했으니 그는 이제 상대 팀과 심판을 구해야 한다. 너무 강한 팀을 구하면 경기가 재미 없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약한팀을 구하자니 자존심이 상한다. 물론 그것이 그의 팀이 지금까지 기록한 8전 8패의 변명은 되지 않는다. 우선 그는 한점차 승부로 아슬아슬하게 졌던 팀에게 연락을 한다. 이런 젠장. 토요일엔 다들 일 한단다. 물론 그는 알고 있다. 상대편이 그의 팀을 피한다는 걸. 그 1승의 추억으로 올해를 버티고자 자기네를 피한다는 걸. 어쩐다. 아하! 그래 전날 게임을 했던 록커스가 있었지. 그들의 불룩 나온 배와 4연속 실책과 술과 담배와 인생에 지친 얼굴들. 그래, 그들이...잠깐 이자와는? 이자와는 어쩌지?  다시 이자와를 만나야 하는 건가? 그러다 그는 문득 34 : 4로 졌던 두 달전의 악몽을 떠올린다. 이자와가 이겼다.

9.
훗 새드. 손톱 손질이 끝난 손으로 휴대전화를 바꿔잡은 그는 담배가 무척 피고 싶어진다. 선약이 있단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이자와와는 인연이 아닌게지. 그럼 강호의 고수들을 피바람 부는 구장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건가. 그순간 쓰나미처럼 그의 머릿속에 11월 11일 야간 경기 상대팀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 그들이 있었지. 쓰나미 야구단. 어차피 후에 리턴 매치를 열어야 하는 팀. 이왕 그렇게 된거 홈으로 불러들이는 거야. 오케이. 승락이다. 심판 배정도 받았다. 그는 마음속 짐을 던 사람 마냥 좋아한다. 30일 간 10게임. 좋다. 지옥의 10연전이다.

10.
다시 사무실로 돌아 온 그는 일을 시작한다. 야구를 하자니 야근은 어쩔 수 없다. 밤 10시 그의 휴대폰에 한통의 전화가 울린다. 아까 그가 돌렸던 문자에 대한 답 전화. 11월엔 비는 타임이 없고 12월도 다 찼단다. 그런데 12월에 3일 간 올 타임을 쓸 수 있으니 필요하면 이야기 하란다. 아싸! 평소 뛰어 보고 싶었던 구장이다. 그는 무조건 쓴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상대가 머뭇거린다. 다. 12월 마지막주 금토일인데 괜찮겠어요? 12월 마지막주면 좀 춥겠지만 겨울에 눈 맞으면서 야구하는 것도 사나이의 로망. 그는 알겠다라고 대답하려다, 대답하려다, 대답하려다, 그만 울컥한다. 제기랄. 12월 25일 26일 27일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이다. 울컥한 나머지 그는 이봐요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에 아니 크리스마스 연휴가 아니래도 그렇지 그런 황금 같은 연휴 기간에 야구를 하는 미친 놈들이 어디있어요!라고 말할 뻔 했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 못한다.

11.
10월 2일 3일 4일. 추석 연휴기간. 추석 당일만 빼고 야구 시합을 한 그와 그의 팀원들이 생각 났기 때문이다. 제기랄. 그는 알겠다고 그날은 애인과 보낼거라고. 정말 그럴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다. 조만간 그 구장관리인에게 전화를 할 거라는 걸. 시린 가슴 위로 전화를 끊으며 그는 불러 본다. 가흠, 준, 재욱,  영효, 우성. 솔로인 팀원들의 이름을. 그리고 또 그는 불러 본다. 운기, 형준, 강석, 태천, 성원,  상, 희원 이도. 추석 연휴 따뜻한 가정대신 배트를 택했던 그 이름들을.

12.
그는 바탕화면 폴더를 연다. 야구인의 길. 문서를 연다. 각 구장 예약 타임표를. 그는 적는다. 12월 25일 26일 27일 J모 구장 풀 타임 대여 가능 함. 그가 웅얼거린다. 경기도 제이모 야구장, 초라한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취해 눈 맞고 섰구나. 공이 글러브에 기대 노래하는데 눈에 젖은 야구에 미친놈들이여. 모든 배트는 자신의 불우를 위해 휘두르는 것. 아아! 결국 배트여 모든 야구 하는 것들은 불우하고 또 좀 불우해서 불우의 지복을 누릴 터. 그는 문서를 닫으며 다시 우물거렸다. 올해 가을 첫 공식 경기였던가. 그때 우리가 0 : 19, 5회 콜드로 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야구를 놓아 보낸 기억은 없다. 문서를 닫고 폴더를 닫고 그는 컴퓨터를 끈다. 낯설다. 그의 사무실이 아닌 것 같다. 늦은 밤. 퇴근.

by 감정의폭주족 | 2009/10/30 00:42 | 트랙백 | 덧글(12)

..

정말 나는 내가 새초롬했으면 좋겠어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쓸쓸하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고
그냥 나는 내가 새초롬했으면 좋겠어
새초롬만했으면 좋겠어

by 감정의폭주족 | 2009/10/18 17:59 | 트랙백 | 덧글(1)

장르소설 시장의 문제 - 특히 퀄리티와 보장부수에 대하여

장르시장 이야기

1.
1번의 경우 일정부분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코믹스의 경우였고 장르소설의 경우는 상당부분 많이 다르다. 난‘장르소설 출판시장이란 것이 존재했는가?’부터가 의문이다. 80년대 <영웅문>의 성공이나 <발해의 혼>의 성공은 개별 작품으로서의 성공이었지 그게 장르소설 출판시장의 성립을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레디오스님의 말 그대로 대여점이 장르시장을 망가지게 한 원흉은 아니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이나 그때나 시장이 망가지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건 바로 ‘생각 없는 출판사들의 무분별한 출판’ 때문이다.
그 시절 신무협의 기치를 들고 일어났던 뫼가 망가지기 시작한 건 작가들 다 떠나고 출간종수에 신경 쓰면서 권천이란 필명을 돌려쓰면서부터였고 - 아니 잘 나가는 뫼를 보고 다른 출판사들이 구간본들을 미친 듯이 재간했을 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했었다. - 예전 대여점 책장 하나를 빼곡하게 채웠던 자음과 모음역시 초창기 가지고 있던 초심을 잃고 연재글들을 그냥 밀어내기 시작하면서 망가졌다.
그리고 지금 시장이 왜곡되고 망가지고 있는 이유 역시 단 하나다.
바로‘생각 없는 출판사들의 무분별한 출판.’

2.
2번의 경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누군가는 나쁜 짓을 한다. -_-

3.
3번의 “퀄리티라는 것은 대단히 상대적인 말이다. 대여시장이 없어진다고 하여 퀄리티 낮은 작품까지 사라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는 일정부분 동의한다. 나 역시 대여시장이 없어진다고 퀄리티 낮은 작품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출판이 덜 될 거다. 기본부수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대여시장이 없는데 말 그대로 출판 되서는 안 되는 책들, 판매가 안 될게 뻔히 보이는 책을 출판사 사장이 바보가 아닌 이상 내줄 리가 없으니까.

그러나 레디오스님의 말 중 “혹시 국내 만화가가 몇 명인지 아는 사람 있는가? 1,000명이 넘는다면 그 중 몇 명의 만화가 이름을 알고 있는가? 당신이라면 100명의 작가가 그리는 만화만을 보고 싶어서 900명의 만화가가 활동할 공간을 죽여버리겠는가? 문제는 저 100명의 만화가 중에서 90명은 과거에 900명에 속하던 만화가 중 한 명이었는데?
선택해야 한다. 10개의 퀄리티 높은 작품만을 읽거나, 100개의 퀄리티 높은 작품이 담긴 1000개의 퀄리티고 뭐고 알 수 없는 작품을 찾아 헤메거나다. 10개의 시장과 1000개의 시장. 10개의 시장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작가는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해요.' '부모 잘 만난 사람만 작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지금 현재 장르 출판사를 하는 나 역시 10개의 시장을 선택했지만 작가는 이슬만 먹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부모 잘 만난 사람만 작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고 욕심이 없어서 한 달에 책 열권 백권 내고 싶지 않았겠는가. 나도 열권 백권 내고 싶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고 싶었다. 좋은 글만 낼 수 있었다면.
그런데 그럴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두 길이었다. 하나는 장르소설의 전반적인 질적 하락이나 시장의 왜곡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계약해서 내고 빨리빨리 계약해서 내는 대충 내는 길. 그리고 또 하나는 힘들더라도 좋은 글을 선택하고 작가와 상의 해 다듬어 내는 길. 그런데 아무리 마인드 콘트럴을 해봐도 첫 번째 길은 선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길을 선택하는 순간 내가 출판사를 차리는 이유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출판을 안 하면 안 했지 죽어도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두 번째 길을 선택했고 1년에 열두 타이틀을 채운 해가 없었다. -_-

사실 그 동안 적자도 볼만큼 봤다. 부모님 잘 만나서 취미로 출판한다는 말도 들어봤다. -_- 심지어 한 달에 60권이 넘게 쏟아지는 이 시장에서 그나마 한권이라도 좋은 책을 내자고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동안 파란을 버티게 해주고 지켜준 작가들은 편집부의 리뷰와 수정요구에 큰 불만 없이(어쩌면 이건 내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_-;;) 좀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 그동안 못 살게 굴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앞으론 더 못살게 굴 겁니다.^^ - 편집부는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마음을 먹으려고 하면 ‘다른 데랑 똑 같이 책 밀어내기 하라시면 그만 둬요.’ 라고 협박을 해줬다. -_-;;

그렇지만 난 파란이 조금 더 발전하고 장르시장(물론 로맨스 시장을 의미한다.)을 위해선 더 까다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파란이 더 힘들어질지 모르겠지만 작가들의 불만이 더 커질지 모르겠지만 (다른데서는 그냥 군 말 없이 내주는데 파란은 이것저것 트집을 잡는다더라는 소문도 났다는 걸 안다. -_-) 그래도 그게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더 까다롭게 굴기 시작했다. 리뷰도 더 철저히 하고, 수정도 더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먼저 반품이 줄었다.
파란의 2007년 한해 반품은 서점과 대여시장을 합쳐 35%였다. 서점은 32%, 대여점은 38%. 그런데 2008년 9월 현재까지의 반품은 서점이 12% 대여점은 26%, 전체 평균 반품은 17%가 되었다.
두 번째 서점 판매가 늘었다.
2007년의 경우 서점과 대여점의 판매 비율은 서점 6.5 대여점 3.5였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 2008년 9월까지의 서점과 대여점의 판매 비율이 8:2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간 타이틀의 평균 판매부수가 늘었다.
출간 이후 14쇄를 찍은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경우야 특별한 경우라 치더라도 올해 출간작의 경우만 봐도 <기란>의 경우 4쇄, <프레지던트>와 <눈꽃>은 3쇄, <메이비 메이비 낫>과 <푸른밤을 날아서>는 2쇄를 찍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작품 <마녀의 정원>, <월성연화>, <시에스타> 역시 서점에서 꾸준하게 주문이 오고 있다. 지금 10월인데 이제 8타이틀, 그러니까 결국 올해도 나의 꿈인 -_- 한달에 한 타이틀은 못채운다는 이야기다. ㅠㅠ

물론 올해만 반짝 이런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늘 생각한다. 정당하게 노력하면 언제나 그 보답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자기 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진짜 작가라고. 그리고 그런 작가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언젠가는 레디오스님이 말하신 100명의 작가 안에 들 거라고.

4.
그리고 보장부수의 문제는 글쎄 레디오스님의 말대로 4,000부 보장을 해주고 6,000부를 찍었다면 그거야 말로 사기다. 어느 출판사가 그랬는지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다. 그런 출판사가 있다면 지탄 받아야 한다.

보장부수가 생긴 건 다른 게 아니라 작가를 잡기 위한 출판사들의 베팅 때문이다.
대여점의 수는 정해져있다. 즉 판매의 한계가 정해져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 출판사들은 한계치에 가까이 팔리는 작가들에게 실제 판매부수와는 다른 인세와 보장부수를 약속했다. 이런 초창기 보장부수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 어차피 시장이란 대여시장밖에 없었고 아무리 팔아도 판매의 한계가 정해진 시장에서 100번 대여되는 작가와 겨우 10번 간신히 대여되는 작가의 위상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만약 대여시장이 아니었다면 100번 대여되는 작가들은 실제로 대여시장보다 더 많은 부수를 팔았을 거고 더 많은 인세를 받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때의 보장부수는 일종의 보너스 개념이었다.

그런데 그 뒤 새로운 출판사들이 들어오고 새로운 작가들이 나오면서 이 보장부수라는 개념이 이상해졌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시장에서 5천부가 나간다면 이런저런 걸 다 따져서 7천부 혹은 만부의 인세를 보장해 준 것이다. 이걸 어느 출판사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보장부수라는 것이 작가의 자존심이 되었고 실제 판매부수와는 상관없이 계약을 했다.
내가 장르 소설판에 뛰어들어 책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고 장르출판을 한다고 출판사를 차릴 때도 내가 결심했던 것 중 하나는 절대 보장부수는 없어야 한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정당한 노력에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야 하듯이 정당한 대가 역시 정당한 노력을 통해야 한다고 믿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단지 작가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보장부수를 부르는 출판사와 실제자기 글에 대한 판매와는 상관없이 보장부수를 요구하는 작가들을 이해 할 수 없다.
만약 출판사가 어느 작가의 글을 보고 최소 5천부가 나갈 책이라고 생각했다면 5천부 보장을 해주는 게 맞다. 그리고 5천부를 찍으면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단지 작가를 잡기 위해 5천부를 보장해주고 3천부만 찍는다면 그거야말로 어이없는 일이다. 쉽게 말해 작가는 2천부의 불로소득을 올리는 거고 출판사는 그 2천부의 인세를 어떻게든 다른 곳에서 보전하려고할 테니까.

그래서 난 장르작가들이 어떻게 보장부수가 자존심일 수가 있는지를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단지 자기의 책이 대여점 시장에서만 유통되고 거기에 만족한다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난 작가의 자존심은 실제 책의 판매와 그 글의 퀄리티에 있다고 믿는다. 만약 나에게 글의 수준은 형편없는데 이상하게 대여 시장에서 먹히는 글과 대여 시장에선 안 팔릴게 뻔하게 보이지만 퀄리티가 높은 글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난 두 말 할 것 없이 글의 퀄리티를 선택하겠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다.

by 감정의폭주족 | 2008/10/17 21:18 | 로맨스와 나 | 트랙백(2) | 핑백(1) | 덧글(37)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