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시장 이야기1.
1번의 경우 일정부분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코믹스의 경우였고 장르소설의 경우는 상당부분 많이 다르다. 난‘장르소설 출판시장이란 것이 존재했는가?’부터가 의문이다. 80년대 <영웅문>의 성공이나 <발해의 혼>의 성공은 개별 작품으로서의 성공이었지 그게 장르소설 출판시장의 성립을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레디오스님의 말 그대로 대여점이 장르시장을 망가지게 한 원흉은 아니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이나 그때나 시장이 망가지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건 바로 ‘생각 없는 출판사들의 무분별한 출판’ 때문이다.
그 시절 신무협의 기치를 들고 일어났던 뫼가 망가지기 시작한 건 작가들 다 떠나고 출간종수에 신경 쓰면서 권천이란 필명을 돌려쓰면서부터였고 - 아니 잘 나가는 뫼를 보고 다른 출판사들이 구간본들을 미친 듯이 재간했을 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했었다. - 예전 대여점 책장 하나를 빼곡하게 채웠던 자음과 모음역시 초창기 가지고 있던 초심을 잃고 연재글들을 그냥 밀어내기 시작하면서 망가졌다.
그리고 지금 시장이 왜곡되고 망가지고 있는 이유 역시 단 하나다.
바로‘생각 없는 출판사들의 무분별한 출판.’
2.
2번의 경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누군가는 나쁜 짓을 한다. -_-
3.
3번의 “퀄리티라는 것은 대단히 상대적인 말이다. 대여시장이 없어진다고 하여 퀄리티 낮은 작품까지 사라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는 일정부분 동의한다. 나 역시 대여시장이 없어진다고 퀄리티 낮은 작품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출판이 덜 될 거다. 기본부수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대여시장이 없는데 말 그대로 출판 되서는 안 되는 책들, 판매가 안 될게 뻔히 보이는 책을 출판사 사장이 바보가 아닌 이상 내줄 리가 없으니까.
그러나 레디오스님의 말 중 “혹시 국내 만화가가 몇 명인지 아는 사람 있는가? 1,000명이 넘는다면 그 중 몇 명의 만화가 이름을 알고 있는가? 당신이라면 100명의 작가가 그리는 만화만을 보고 싶어서 900명의 만화가가 활동할 공간을 죽여버리겠는가? 문제는 저 100명의 만화가 중에서 90명은 과거에 900명에 속하던 만화가 중 한 명이었는데?
선택해야 한다. 10개의 퀄리티 높은 작품만을 읽거나, 100개의 퀄리티 높은 작품이 담긴 1000개의 퀄리티고 뭐고 알 수 없는 작품을 찾아 헤메거나다. 10개의 시장과 1000개의 시장. 10개의 시장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작가는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해요.' '부모 잘 만난 사람만 작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지금 현재 장르 출판사를 하는 나 역시 10개의 시장을 선택했지만 작가는 이슬만 먹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부모 잘 만난 사람만 작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고 욕심이 없어서 한 달에 책 열권 백권 내고 싶지 않았겠는가. 나도 열권 백권 내고 싶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고 싶었다. 좋은 글만 낼 수 있었다면.
그런데 그럴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두 길이었다. 하나는 장르소설의 전반적인 질적 하락이나 시장의 왜곡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계약해서 내고 빨리빨리 계약해서 내는 대충 내는 길. 그리고 또 하나는 힘들더라도 좋은 글을 선택하고 작가와 상의 해 다듬어 내는 길. 그런데 아무리 마인드 콘트럴을 해봐도 첫 번째 길은 선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길을 선택하는 순간 내가 출판사를 차리는 이유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출판을 안 하면 안 했지 죽어도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두 번째 길을 선택했고 1년에 열두 타이틀을 채운 해가 없었다. -_-
사실 그 동안 적자도 볼만큼 봤다. 부모님 잘 만나서 취미로 출판한다는 말도 들어봤다. -_- 심지어 한 달에 60권이 넘게 쏟아지는 이 시장에서 그나마 한권이라도 좋은 책을 내자고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동안 파란을 버티게 해주고 지켜준 작가들은 편집부의 리뷰와 수정요구에 큰 불만 없이(어쩌면 이건 내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_-;;) 좀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 그동안 못 살게 굴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앞으론 더 못살게 굴 겁니다.^^ - 편집부는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마음을 먹으려고 하면 ‘다른 데랑 똑 같이 책 밀어내기 하라시면 그만 둬요.’ 라고 협박을 해줬다. -_-;;
그렇지만 난 파란이 조금 더 발전하고 장르시장(물론 로맨스 시장을 의미한다.)을 위해선 더 까다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파란이 더 힘들어질지 모르겠지만 작가들의 불만이 더 커질지 모르겠지만 (다른데서는 그냥 군 말 없이 내주는데 파란은 이것저것 트집을 잡는다더라는 소문도 났다는 걸 안다. -_-) 그래도 그게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더 까다롭게 굴기 시작했다. 리뷰도 더 철저히 하고, 수정도 더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먼저 반품이 줄었다.
파란의 2007년 한해 반품은 서점과 대여시장을 합쳐 35%였다. 서점은 32%, 대여점은 38%. 그런데 2008년 9월 현재까지의 반품은 서점이 12% 대여점은 26%, 전체 평균 반품은 17%가 되었다.
두 번째 서점 판매가 늘었다.
2007년의 경우 서점과 대여점의 판매 비율은 서점 6.5 대여점 3.5였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 2008년 9월까지의 서점과 대여점의 판매 비율이 8:2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간 타이틀의 평균 판매부수가 늘었다.
출간 이후 14쇄를 찍은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경우야 특별한 경우라 치더라도 올해 출간작의 경우만 봐도 <기란>의 경우 4쇄, <프레지던트>와 <눈꽃>은 3쇄, <메이비 메이비 낫>과 <푸른밤을 날아서>는 2쇄를 찍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작품 <마녀의 정원>, <월성연화>, <시에스타> 역시 서점에서 꾸준하게 주문이 오고 있다.
지금 10월인데 이제 8타이틀, 그러니까 결국 올해도 나의 꿈인 -_- 한달에 한 타이틀은 못채운다는 이야기다. ㅠㅠ
물론 올해만 반짝 이런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늘 생각한다. 정당하게 노력하면 언제나 그 보답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자기 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진짜 작가라고. 그리고 그런 작가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언젠가는 레디오스님이 말하신 100명의 작가 안에 들 거라고.
4.
그리고 보장부수의 문제는 글쎄 레디오스님의 말대로 4,000부 보장을 해주고 6,000부를 찍었다면 그거야 말로 사기다. 어느 출판사가 그랬는지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다. 그런 출판사가 있다면 지탄 받아야 한다.
보장부수가 생긴 건 다른 게 아니라 작가를 잡기 위한 출판사들의 베팅 때문이다.
대여점의 수는 정해져있다. 즉 판매의 한계가 정해져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 출판사들은 한계치에 가까이 팔리는 작가들에게 실제 판매부수와는 다른 인세와 보장부수를 약속했다. 이런 초창기 보장부수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 어차피 시장이란 대여시장밖에 없었고 아무리 팔아도 판매의 한계가 정해진 시장에서 100번 대여되는 작가와 겨우 10번 간신히 대여되는 작가의 위상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만약 대여시장이 아니었다면 100번 대여되는 작가들은 실제로 대여시장보다 더 많은 부수를 팔았을 거고 더 많은 인세를 받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때의 보장부수는 일종의 보너스 개념이었다.
그런데 그 뒤 새로운 출판사들이 들어오고 새로운 작가들이 나오면서 이 보장부수라는 개념이 이상해졌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시장에서 5천부가 나간다면 이런저런 걸 다 따져서 7천부 혹은 만부의 인세를 보장해 준 것이다. 이걸 어느 출판사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보장부수라는 것이 작가의 자존심이 되었고 실제 판매부수와는 상관없이 계약을 했다.
내가 장르 소설판에 뛰어들어 책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고 장르출판을 한다고 출판사를 차릴 때도 내가 결심했던 것 중 하나는 절대 보장부수는 없어야 한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정당한 노력에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야 하듯이 정당한 대가 역시 정당한 노력을 통해야 한다고 믿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단지 작가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보장부수를 부르는 출판사와 실제자기 글에 대한 판매와는 상관없이 보장부수를 요구하는 작가들을 이해 할 수 없다.
만약 출판사가 어느 작가의 글을 보고 최소 5천부가 나갈 책이라고 생각했다면 5천부 보장을 해주는 게 맞다. 그리고 5천부를 찍으면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단지 작가를 잡기 위해 5천부를 보장해주고 3천부만 찍는다면 그거야말로 어이없는 일이다. 쉽게 말해 작가는 2천부의 불로소득을 올리는 거고 출판사는 그 2천부의 인세를 어떻게든 다른 곳에서 보전하려고할 테니까.
그래서 난 장르작가들이 어떻게 보장부수가 자존심일 수가 있는지를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단지 자기의 책이 대여점 시장에서만 유통되고 거기에 만족한다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난 작가의 자존심은 실제 책의 판매와 그 글의 퀄리티에 있다고 믿는다. 만약 나에게 글의 수준은 형편없는데 이상하게 대여 시장에서 먹히는 글과 대여 시장에선 안 팔릴게 뻔하게 보이지만 퀄리티가 높은 글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난 두 말 할 것 없이 글의 퀄리티를 선택하겠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