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언니 악명을 떨치다 7

7 박언니 분투하다

그렇게 회사에서 내쳐진 나는 어느 장르 출판사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시장에 순응하지 않는 -_- 편집자를 누가 데려다가 쓸 것이며 자기 고집만 부리는 편집자를 어느 사장이 좋아하겠는가. 결국 내가 갈 길은 하나였다. 삼겹살 집을 차리거나 -_- 출판사를 내는 것. 그렇게 맘을 먹은 나는 모르겠어서 정말 모르겠어서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한달에 몇 십권씩 쏟아지는 지금 이런 시장에서 로맨스를 출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아니 출판한다고 해도 거기에 공을 들여보았자 시장도 독자도 작가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데 그게 뭐하는 짓인가를. 로맨스따위나 만드는 주제에 출판에 대해 아는 척 한다고 따귀나 맞는 내가 로맨스란 장르에 대해 뭘 할수 있는가를. 내가 로맨스증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아닌데 지금 이게 뭐하겠다는 짓인가를. 로맨스 출판의 명가라는 큰 울타릴 가지고서도 아무 것도 제대로 해놓지 못한 주제에 맨 몸으로 새로 시작 해 뭘 할 수 있겠는가를.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삽겹살 집을 차리면야 돼지고기야 실컷 먹겠지만 -_- 허기진 맘은 채우지 못하리라는 것을. 시장에서 실패자로 낙인찍힌채 매일 삽겹살을 구으며 소주잔을 기울일거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출판사를 차리겠다는 건 결국 자기위안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출판사를 차리면 이제야 정말 베네트 서프처럼 내맘대로, 내 뜻대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내고 싶은 책, 내가 읽고 싶은 책, 내가 만들고 싶은 디자인에, 종이도 내 맘대로 쓰고, 내가 만들고 싶은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출판사를 차리겠다는 마음이 자기 위안이거나 자기 만족일지라도 나는 로맨스 출판을 하기로 결심했고 매일 매일 삼겹살에 소주를 마실 수 있다는 유혹은 정말 강했지만 결국 삼겹살집은 잊기로 했다.

2004년 여름을 지나며 한달에 60권씩 나오던 광풍은 한풀 꺾였지만 내가 로맨스 출판사를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은 그해 한달 평균 40권 이상의 로맨스 소설이 시장에 풀렸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작가들을 만나고 하나하나 새롭게 배우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출간준비를 했다. 도로시가 합류를 했고 예전에 같이 일했던 작가들을 만나 원고에 대해 논의하고 또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 해 새로 계약을 했다. 사무실을 구하고 아직 출판사를 오픈하기 전이였지만 주말, 연휴에도 사무실에 나와 원고 검토를 하고 교정을 봤다.
드디어 첫 출간작이 결정되었다. 서진우 작가의 <스캔들>. 수정도 교정도 다 문제가 없었지만 표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디자인 시안이 나오고 나와 도로시와 디자이너 모두 맘에 들어하는 시안을 정했는데 아뿔싸! 그 디자인에 어울리는 표지 용지가 모자른 것이다. 수입지였는데 초판분량을 찍기에는 양이 모자랐다. 다시 다른 시안으로 가거나 영국에서 종이를 수입해야 했다. 다른 시안으로 가기엔 맘이 불편했다. 해서 영국으로 오퍼를 넣었으나 3개월이 지나서야 배가 들어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민하다 전국 제지공장을 뒤지기로 했다. 그만큼의 분위기와 재질을 낼 수있는 종이를 만들어 줄수 있는 공장을 찾아보기로. 수입하는 것보다 제작비는 더 들었지만 다행히 공장을 찾을 수 있었고 10월 15일 파란의 첫 출간작이 드디어 시장에 풀렸다. 그달에도 로맨스는 34권이 출간되었지만 <스캔들>의 반응은 좋았다.

당시 시장의 판매량보다 1.5배 가까운 판매량을 보인 <스캔들>에 나는 용기백배 했고 두번째 타이틀 이선미 작가의 <국향 가득한 집>을 출간 했다. 국향 역시 공을 들인 보람이 있어서인지 금새 시장에서 반응이 왔다. 예전 국내 로맨스 태동기에 비하면 그리 큰 반응은 아니었지만 나는 더 큰 힘을 낼 수 있었다. 노력하면, 공을 들이면 사람들이 알아 준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하지만 하나의 불안은 있었다. <스캔들>이나 <국향가득한집>은 이미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 공들이고 노력한 거와 상관 없이 잘 나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결국 세번째 작품이 분수령이었다. 세번째 작품은 신인이었다. 단지 재미만 가지고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야 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표지와 편집과 마케팅에 힘을 쏟는 것 뿐이었다. 2004년 12월, 세번째 타이틀 <내 남자다>가 출간 되었다. 앞선 두 작품 만큼은 아니었지만 <파란> 책은 재밌다, <파란> 책은 믿고 읽을 수 있다라는 반응이 왔다.
기뻤다. 너무 기뻤다. 나는 들떠서 새로운 작품들을 준비했고 더 노력했다. 2004년 크리스마스 이브는 행복 할 것만 같았다. 매년 교정을 보거나 원고 검토를 하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지만 2004년은 주변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기쁘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랬다. 난 그럴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23일만 해도 난 그 다음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2004년 12월 24일이 왔다. 그날 나는 술을 마셨지만 그건 기뻐서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내남자다>는 표절 의혹을 받았고 표절 의혹이 터지자 지수현의 팬들이 되돌아왔다. 내 생애 최악의 크리스마스 이브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by 감정의폭주족 | 2005/11/29 19:27 | 로맨스와 나 | 트랙백 | 덧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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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5/11/2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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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시니컬콩 at 2005/11/29 20:13
순간 가슴이 덜컥................;;
조마조마 한 심정으로 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어요. ㅠ.ㅠ
Commented by catnip at 2005/11/29 20:58
아아..이거였군요...이런 말씀드리면 안되지만 되돌아왔다.라니 표현이 너무 적당하십니다. 한편으론 가슴 쓰리면서도요.;;;;
그 작가의 팬뿐만 아니라 그...쪽도 대단히 시끄러웠지요...여러모로.
정말 말그대로 다사다난한 연말을 보내실수밖에 없으셨겠네요.
Commented by 투덜돼지 at 2005/11/29 21:07
참 드라마 같은 일이군요. 파란만장 박언니 입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5/11/29 21:12
숨고르기하고... 마저 써줘야지. 이런 극악의 절단신공은 배우면 안 돼요, 안 돼.
Commented at 2005/11/29 21:1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5/11/29 21: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rometeus at 2005/11/29 22:39
흠...
Commented at 2005/11/29 23: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5/11/29 23: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감정의폭주족 at 2005/11/29 23:47
비밀글1/넵. 힘 내야죠. 반전은 영원합니다.^^
시니컬콩/ㅎㅎㅎ. 기다리세요. ^^
catnip/네. 사실 그 이야기 정말 할게 많죠. ^^
투덜돼지/파란만장이 제 다른 별명입니다만. ^^
초록불/ 님하..서동요. ^^
Commented at 2005/11/29 23: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감정의폭주족 at 2005/11/29 23:50
또비밀글1/^^. 지금은 다 지난 일이니까요. ^^
또비밀글2/저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에 절단 신공은 아니고요. 쓰다보니 바빠서..^^;;;
Prometeus/흠.....
또비밀글3/에..그런 일이 있었드랬죠. ^^
또비밀글4/응. 아직 속에 불이 있어. -_-
또비밀글5/네. 그 이야기에요. -_- 뭐 지난 일이니까요. ^^
Commented by 감정의폭주족 at 2005/11/29 23:51
새비밀글/앗. 그 사이에^^. 지금은 도서목록에서 빠졌죠. 그건 그렇고 덧글 다시 남길게요. ^^
Commented at 2005/11/30 00:0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5/11/30 00: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코 at 2005/11/30 00:57
ㅠ-ㅠ
Commented by 서누 at 2005/11/30 01:03
이건 저도 기억하는 난리로군요. 비차 나오기 한 달 전에 터진 일이라 무척 당황했었습니다.
Commented at 2005/11/30 01:2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5/11/30 01:2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5/11/30 02: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功名誰復論 at 2005/11/30 07:50
현실은 영화보다 영화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이야기입니다.

Commented by 감정의폭주족 at 2005/11/30 08:38
또비밀글1/에...제가 저번 이번 글에 잘난척을 좀...^^;;;
또비밀글2/넵. 환영합니다. ^^
아코/^^
서누/저도 무척 당황 했었습니다.
또비밀글3/연락드릴게요. ^^
또비밀글4/넵. 접수 했습니다. ^^
또비밀글5/아 어느 선배님이? 그때야 뭐 제가 왜 빠른 대처를 했는지가 곧 밝혀집니다. 호호호호호.^^
功名誰復論/좀 구질구질한 영화죠. ^^
Commented by gnuland at 2005/11/30 08:53
대단합니다.
이야기는 또 이렇게 흘러가는군요.
'제국의 역습'인가요.^^a

설마 이야기가 흘러흘러 현재진행형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겠지요?
Commented at 2005/11/30 09: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한도사 at 2005/11/30 09:20
아쉽다~~~ 삼겹살집을 냈으면, 지금쯤 TV에 소개도 자주되고, 빌딩 올렸을지도 모르는데... ^^
Commented at 2005/11/30 10: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ena9 at 2005/11/30 11:29
strikes back! ... 이제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생각보단 얼마 안 된 일이네요. 지금 이 이야기를 쓰고 계신걸 보면 지금은 많이 괜찮아지신 거라고 믿어 봅니다.
Commented by 불타는이단옆차기 at 2005/11/30 12:42
새초롬한 박언니네 삼겸살~..
음..왠지 안타깝군요..(뭐가!!..)
이제 시즌 2의 시작이군요....
Commented by 감정의폭주족 at 2005/11/30 12:48
gnuland/넓게보면 현재진행형이죠.^^
또비밀글1/기다리고들 있었더라구요.^^
한도사/ㅎㅎㅎㅎ. 그전에 제가 다 먹어조지지 않았을까요. -_-
또비밀글2/6권...^^;;;
또비밀글3/나도 알어. -_- 그나저나 살아있었군. ^^
pena9/뭐 괜찮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없었던 일도 아니고.^^
불타는이단옆차기/네버엔딩 스토리라^^ 사실 언제 끝날지는 호호호호호.
Commented by nomodem at 2005/11/30 12:58
이번편이 끝편인가보다 했더니...크아아

쓰디쓴 글이지만, 연재의 묘미가 있네요.-_-;
Commented at 2005/11/30 13: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5/11/30 15: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감정의폭주족 at 2005/11/30 17:21
nomodem/연재의 묘미. -_- 그냥 그냥 생각나는대로 쓴거라^^
또비밀글1/뭐 박언니 분투기로?
또비밀글2/으흠 . 그럼 내일은 뭐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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