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05일
박언니 악명을 떨치다 9
9 박언니 비겁하다
드디어 2005년이 왔다. 사람들은 여전했고 로맨스 출간 종수도 여전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내 남자다> 회수 및 절판 공지를 올린지 두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왜 아직까지 <내 남자다>가 서점에 깔려있냐고 따지는 전화. 이름도 첨 듣는 동네 서점을 이야기하며 거품을 무는 전화들. 거래하는 모든 서점과 도매상에 공지를 보냈고 이미 회수 중이라고 이야기해도,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을 통해 개별적으로 판매된 분량에 대해서는 마땅한 회수방법이 없어,원하시는 독자분께 개별적으로 환불을 해주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도 그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고 제 할말만 하고 끊는 그런 전화들이.
심각한 난독증 환자들, 심각한 귀머거리들의 전화에 화가 났지만 우리가 약속한 사람들은 그런 인간들이 아니라 로맨스 독자들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참았다. 그 분노를 그 미움을 나는 도매상에 한번 더 공지를 보내고 한번 더 전화를 하는 걸로 대신했고 책들을 회수하며 혼자 삭혔다.
그렇게 1차 회수를 한 후 파주 창고에 가 쌓여 있는 <내 남자다>를 보았다.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책들. 빨간 노끈으로 둘둘 말린 혹은 박스채로 쌓여져 덩그마니 놓여있는 책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고생고생 하고 만들었는데 책으로의 사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라질 운명에 놓인 그것들을 보니 먹먹했다. 너무 먹먹해서 너무 억울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같이 간 교정 박군과 책들만 애꿎은 책들만 들추어보다 몇권인가를 불태웠다. 기형도나 박노해의 시집을 태우듯, 박노해가 전향서를 발표하던 날 술을 마시고 박노해의 시집을 태우며 다시는 책을 태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그 날 책들을 또 태웠다. 그렇게 책들을 불태우며 괜히 주먹도 휘둘러보고 소리도 질렀다. 악도 썼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든 철저하지 못했던 나에게, 끝까지 책을 보호해주지 못한 비겁했던 나에게, 그냥 누군가에게 비겁한 모든이들에게.
불태우고 남은 1차 회수분 2천여권의 책을 파지로 넘겼다. 5만 몇천원의 파지 값. 그 파지 값을 창고 직원들에게 소주 값이나 하시라고 쥐어주면서 나는 다짐했다. 더 철저해 지겠다고. 내남자다 최종공지에 올린 대로 앞으로는 표절을 비롯한 어떤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할 거라고. 무엇보다 표절이라는 행위자체가 근절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후유증은 컸다. 내 남자다 이후 신간의 판매량이 눈에 보일 정도로 줄었다. 어려웠고 힘들었지만 도와주는 여러 사람들이 있어서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
<내 남자다> 교정을 본 교정 박군은 교정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교정을 본 자기 책임도 있으니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 교정비를 지급하겠다고 했고 교정박군은 그렇다면 대신 <내 남자다>를 달라 그랬다. 이건 파는 게 아니니 괜찮지 않냐고. 주변에 뿌리겠다고, 교정에 자기 이름이 들어있으니 선물하겠다며 책을 가져갔다. 나는 그런식으로라도 불태워질 책이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고 고마웠다.
<내 남자다> 디자인을 했던 디자인팀 역시 너무 고마웠다. 보통 표지와 내지 디자인은 한 팀에서 작업을 하는데 <비차>의 내지 디자인을 해주겠다고 먼저 나섰다. 덕분에 <비차>의 아름다운 내지 디자인이 만들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으로 한 디자인, 끈끈한 정으로 만든 디자인이기에 <비차> 디자인이 더 예쁘게 나온 건지도 모른다.
꼭 표절의혹 사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점점 악화되어 가는 시장의 탓이겠지만 점점 줄어드는 판매량에도 불구하고, 표절출판사라고 지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와 계약 해준 작가들이 우리를 믿고 일을 하겠다고 나서 준 작가들이 나는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독자들이 있어 고마웠다. 우리 책을 애정을 가지고 읽어 준 독자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파란을 믿어 준 독자들이. 다행히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도로시는 멈추지 않고 일을 해 나갈 수 있었다.
<홀아비구제하기>를, <비차>를, <붉은 눈의 노예>를, <다른 여자의 남자>를, <내사랑 원더우먼>을, <숙세가>를 만들어 나갔다. 쉼 없이 공을 들여, 애정을 가지고 책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그 보답은 아니겠지만 럽펜에서 정리한 2005 상반기 출간소설 평점 발표에 <내사랑 원더우먼>이, <비차>가, <홀아비 구제하기>가 <오래된 거짓말>과 함께 평점 공동 1위에 올랐다. 1위 4편 중 3편이 우리 작품이었다. 그 뒤를 이은 2위도 역시 우리가 만든 <붉은 눈의 노예>였다. (<다른 여자의 남자>는 아깝게 오르지 못했고 <숙세가>는 아쉽게도 기간안에 출간 되지 못했다.)
나는 행복했다. 출판 상황은 힘들어졌지만 주변에 나를 믿어주는 도움을 주는 작가들이, 독자들이, 스텝들이 있기에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마냥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비겁했기에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내 남자다>를 태우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앞으로는 표절을 비롯한 어떤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할 거라고. 무엇보다 표절이라는 행위자체가 근절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에 행복해 할수만은 없었다.
두 달에 한번씩 창고에 가서 그간 쌓였던 내남자를 또 태우고 파지로 넘기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에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그간 많은 표절사건이 또 부당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내 일이 아니라고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회피했기에 나는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나는 이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더 이상 스스로에게 부끄럽게 살 수만은 없기에.
드디어 2005년이 왔다. 사람들은 여전했고 로맨스 출간 종수도 여전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내 남자다> 회수 및 절판 공지를 올린지 두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왜 아직까지 <내 남자다>가 서점에 깔려있냐고 따지는 전화. 이름도 첨 듣는 동네 서점을 이야기하며 거품을 무는 전화들. 거래하는 모든 서점과 도매상에 공지를 보냈고 이미 회수 중이라고 이야기해도,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을 통해 개별적으로 판매된 분량에 대해서는 마땅한 회수방법이 없어,원하시는 독자분께 개별적으로 환불을 해주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도 그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고 제 할말만 하고 끊는 그런 전화들이.
심각한 난독증 환자들, 심각한 귀머거리들의 전화에 화가 났지만 우리가 약속한 사람들은 그런 인간들이 아니라 로맨스 독자들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참았다. 그 분노를 그 미움을 나는 도매상에 한번 더 공지를 보내고 한번 더 전화를 하는 걸로 대신했고 책들을 회수하며 혼자 삭혔다.
그렇게 1차 회수를 한 후 파주 창고에 가 쌓여 있는 <내 남자다>를 보았다.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책들. 빨간 노끈으로 둘둘 말린 혹은 박스채로 쌓여져 덩그마니 놓여있는 책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고생고생 하고 만들었는데 책으로의 사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라질 운명에 놓인 그것들을 보니 먹먹했다. 너무 먹먹해서 너무 억울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같이 간 교정 박군과 책들만 애꿎은 책들만 들추어보다 몇권인가를 불태웠다. 기형도나 박노해의 시집을 태우듯, 박노해가 전향서를 발표하던 날 술을 마시고 박노해의 시집을 태우며 다시는 책을 태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그 날 책들을 또 태웠다. 그렇게 책들을 불태우며 괜히 주먹도 휘둘러보고 소리도 질렀다. 악도 썼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든 철저하지 못했던 나에게, 끝까지 책을 보호해주지 못한 비겁했던 나에게, 그냥 누군가에게 비겁한 모든이들에게.
불태우고 남은 1차 회수분 2천여권의 책을 파지로 넘겼다. 5만 몇천원의 파지 값. 그 파지 값을 창고 직원들에게 소주 값이나 하시라고 쥐어주면서 나는 다짐했다. 더 철저해 지겠다고. 내남자다 최종공지에 올린 대로 앞으로는 표절을 비롯한 어떤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할 거라고. 무엇보다 표절이라는 행위자체가 근절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후유증은 컸다. 내 남자다 이후 신간의 판매량이 눈에 보일 정도로 줄었다. 어려웠고 힘들었지만 도와주는 여러 사람들이 있어서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
<내 남자다> 교정을 본 교정 박군은 교정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교정을 본 자기 책임도 있으니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 교정비를 지급하겠다고 했고 교정박군은 그렇다면 대신 <내 남자다>를 달라 그랬다. 이건 파는 게 아니니 괜찮지 않냐고. 주변에 뿌리겠다고, 교정에 자기 이름이 들어있으니 선물하겠다며 책을 가져갔다. 나는 그런식으로라도 불태워질 책이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고 고마웠다.
<내 남자다> 디자인을 했던 디자인팀 역시 너무 고마웠다. 보통 표지와 내지 디자인은 한 팀에서 작업을 하는데 <비차>의 내지 디자인을 해주겠다고 먼저 나섰다. 덕분에 <비차>의 아름다운 내지 디자인이 만들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으로 한 디자인, 끈끈한 정으로 만든 디자인이기에 <비차> 디자인이 더 예쁘게 나온 건지도 모른다.
꼭 표절의혹 사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점점 악화되어 가는 시장의 탓이겠지만 점점 줄어드는 판매량에도 불구하고, 표절출판사라고 지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와 계약 해준 작가들이 우리를 믿고 일을 하겠다고 나서 준 작가들이 나는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독자들이 있어 고마웠다. 우리 책을 애정을 가지고 읽어 준 독자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파란을 믿어 준 독자들이. 다행히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도로시는 멈추지 않고 일을 해 나갈 수 있었다.
<홀아비구제하기>를, <비차>를, <붉은 눈의 노예>를, <다른 여자의 남자>를, <내사랑 원더우먼>을, <숙세가>를 만들어 나갔다. 쉼 없이 공을 들여, 애정을 가지고 책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그 보답은 아니겠지만 럽펜에서 정리한 2005 상반기 출간소설 평점 발표에 <내사랑 원더우먼>이, <비차>가, <홀아비 구제하기>가 <오래된 거짓말>과 함께 평점 공동 1위에 올랐다. 1위 4편 중 3편이 우리 작품이었다. 그 뒤를 이은 2위도 역시 우리가 만든 <붉은 눈의 노예>였다. (<다른 여자의 남자>는 아깝게 오르지 못했고 <숙세가>는 아쉽게도 기간안에 출간 되지 못했다.)
나는 행복했다. 출판 상황은 힘들어졌지만 주변에 나를 믿어주는 도움을 주는 작가들이, 독자들이, 스텝들이 있기에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마냥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비겁했기에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내 남자다>를 태우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앞으로는 표절을 비롯한 어떤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할 거라고. 무엇보다 표절이라는 행위자체가 근절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에 행복해 할수만은 없었다.
두 달에 한번씩 창고에 가서 그간 쌓였던 내남자를 또 태우고 파지로 넘기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에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그간 많은 표절사건이 또 부당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내 일이 아니라고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회피했기에 나는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나는 이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더 이상 스스로에게 부끄럽게 살 수만은 없기에.
# by | 2005/12/05 18:19 | 로맨스와 나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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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1/노력하겠습니다. ^^ 그나저나 ***님은 울보래요. 소문내야지.^^
功名誰復論/본론이라기보다 이 시리즈를 쓰게된 이유에 대해 그냥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비밀글2/담에 한질 드리죠.^^
pena9/에..비장할 것까지야.^^
Prometeus/표절도 그렇고 기타 등등에 대해서요. ^^
비밀글3/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법입니다. ^^
비밀글4/넵. 고맙습니다. 뭐 비공개야 다들 그래서 비공개로 남기시는 걸요.^^
새비밀글2/헉. 그려 연락하마.
새비밀글3/-_- 작가는요. 무슨 -_-
그래도 결론이 (박언니께는) 나름 행복하신 듯 하여 묘한 기분이 들어요.
위로를 해야 할지, 잘 됐다고 덩달아 기뻐해야 할지.. 아리송....;;
비밀글2/아니 뭐 다들 알고 계시는 이야기에요. 뭐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왜 나만 갖고 그래-_-가 되겠네요.
시니컬콩/에..저도 아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