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16일
사랑을 읽고, 나는 쓰네2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전2권)(정은궐/파란/각권 9,000원)
유교와 당쟁과 성균관유생들을 소재로 한 무겁고 딱딱해질 수 있는 역사 이야기에 연애담이 어울릴 수 있을까? 정은궐은 그게 가능 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녀는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 시대에 대한 깊은 고민, 사서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고증, 그 시대의 사상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을 더한 다음 그 모든 이야기들을 슬렁슬렁 잘 읽히지만 깔끔하고 흠잡을 데 없는 문장으로 씨줄과 날줄을 짰다. 그리고 연애담을 은근 슬쩍 집어넣는다. 그것도 조선시대판 ‘엄마친구아들’인 남자주인공과 병약한 남동생 대신 남장하고 과거를 보게 된 여자주인공의 연애담을. 가히 그 솜씨는 임방울이 쑥대머리를 부르거나 이매방이 살풀이를 추는 것엔 못 미칠지 모르지만 그것에 버금간다. 우린 때로 살아가면서 읽는 내내 행복해지고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그런 글을 만날 때가 있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실연 세탁소 (문지효/이가서/9,500원)
리쌍의 노래처럼 죽을 때까지 사랑만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때로 사랑은 아픔을 낳는다. 사랑이 사람을 배반하거나 사람이 사랑을 배반한다. 사랑이 끝까지 가지 못하고 사랑이 식거나 실연을 당할 때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지난 사랑을 되새긴다. 가장 슬픈 일은 지나간 실연 때문에 또 다른 인연을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실연세탁소는 그런 이별을, 실연을, 아픔을 치유하고 차분하게 세탁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평상에 누워 별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거나 지나간 댄스곡을 흥얼거리며 실연의 상처를 조금씩 이겨내 가는 소근과 그런 소근의 우울한 옆모습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 슬픈 모습을 자신이 가져갔으니 앞으로는 그녀가 웃기만을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은우를 통해 모든 사랑의 상처는 치유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나간 사랑의 상처가 아직도 당신을 울릴 때 이제는 희미해진 옛사랑이 발목을 자꾸만 잡을 때 읽어야 할 책.
연록흔(전5권) (한수영/마야/각권 9,800원)
황제의 보물을 훔친 죄로 참수될 위기에 처한 아버지의 목숨을 평생의 자유와 맞바꾼 남장소녀 연록흔과 그녀가 호위해야만 하는 황룡국의 천자 가륜이 겪는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들. 김용이 신조협려를 통해 ‘정이란 무엇이기에 생사를 가늠하느뇨’라고 무협에 로맨스를 끌어왔다면 한수영은 고대 중국과 한국을 연상시키는 가상 왕국 황룡국과 가장 완벽한 남자주인공 가륜을 주인공으로 국내 최초로 로맨스에 무협이라는 다른 장르를 이끌어 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랑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드러낼 수 없는 괴로움이 흘러간다. 누군가를 멍하니 바라만 봐야 하는 감정이 얼마나 쓰린지 안다면 그러나 그 사랑을 이루었을 때 가질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
연우 (서누/파란/12,000원)
'연우(煙雨)'란, 안개같이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를 일컫는 말이다. 작가는 제목 그대로 시계제로, 앞이 보이지 않는 그러나 어쩌면 가늠 할 수 있는 질문을 로맨스라는 장르를 통해 진지하게 던진다. 사랑이 사상보다 중요한가? 사랑이 혁명보다 중요한가? 아니 신에 대한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각각의 해답을 위해 작가는 울산의 치술령 자락, 어느 일본인이 식민시대에 남긴 저택 안에 한 여자와 한 남자를 고립시킨다. 여자는 친일 자본가의 딸, 동경 사교계에서 '하나(花)'라 칭송받던 남쪽 여인이고 남자는 지하당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북에서 남파되었다가 낙오한 열일곱살 인민군 소년 장교다. 로맨스의 공식대로 고립된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 둘 사이엔 사상과 혁명 신이라는 장애물이 있다. 거기에 둘에게 6.25라는 거대한 민족의 비극이 다가온다. 작가는 던진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않는다. 물론 정답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어쩌면 그렇다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연의 바다(전3권)(이리리/신영/각권 9,000원)
연의 바다가 그려내는 로맨스의 세계는 장엄하고 광대하다. 이리리는 사람들이 로맨스를 읽음으로서 얻고 싶어 하는 욕구를 연의 바다를 통해 모두 충족시켜준다. 우리가 어렸을 때 열광했던 김동화의 아카시아나 이케다 리요코의 올훼스의 창을 보고 느꼈던 그 감동들을. 그 감동은 장대한 스케일에서도 나오지만 정밀한 시계태엽 마냥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성과 그 구성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고대 이집트에 대한 세밀한 묘사의 힘에서 나온다. 여주인공 연하가 새로이 눈을 떴을 때 고대 이집트 파라오 토드모세라는 운명적인 상대를 만났듯이 분명 어딘가에 있다. 운명적인 내 사랑이. 비록 지금 이곳은 아닐지라도.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고 어딘가 정말 내 운명의 사랑이 있다고 믿는 당신이라면 절대로 이 책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인생미학 (정이원/신영미디어/9,000원)
한 남자가 있고 한 여자가 있다. 둘이 만나 사랑을 한다. 로맨스라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서른 살 생일 또 하나의 단순한 ‘연애’를 끝내고 사랑이란 뭘까? 어떤 감정일까? 를 궁금해 하는 한 남자와 지내던 장애 복지원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열아홉 살 눈 먼 소녀가 만나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남자는 누구나 인정하는 엘리트지만 사랑이라는 걸 절대로 믿지 않고 여자는 언제 죽을지 모를 병을 가지고 있는데도? 현실에선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이지만 정이원의 손끝에선 둘의 사랑이 정말 마술같이 이루어진다. 그것도 해피엔딩으로. 지친 스스로를 치유해 줄 수 있는 동화같은 로맨스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는 책.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한국식 로맨스로 아름답게 변주한 이야기다.
# by | 2007/08/16 11:49 | 로맨스와 나 | 트랙백 | 덧글(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비밀글2/네 저도 그렇게 알고있었는데 아니라고 막 그러네요.(소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