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26일
<월성연화> 마감 내내 머리가 아팠다. 원고야 재미있고 잘 된 글이라 원고 때문에 머리 아플 일은 없었다. 다른 문제가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했다. 바로 가격 문제.
권당 원고지 1,700매가 넘는, 그래서 책으로 두 권 합쳐 1,000페이지가 나오는 이 책을 9,800원을 할 것이냐, 아님 눈 딱 감고 10,000원으로 할 것이냐를 가지고 어제까지도 고민했다. 사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200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게 우습긴 할 거다. 그리고 나 역시 일반 출판사를 운영했다면 이런저런 고민 없이 그냥 권당 12,000원을 책정 했을 거다. 그것도 싸게 매긴다고 생각하면서.
왜냐하면 <월성연화>를 쓰기 위해 작가가 들인 노력과 공을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월성연화>의 경우 작가 스스로가 7차례 버전을 통해 1년 넘게 이야기를 가다듬었고, 출판사와의 상의 끝에 마지막 5번의 수정을 거친 작품이다. 그러니까 책으로 선 보이는 이야기는 <월성연화>버전 7.5쯤 된다. 아니 어제 오늘 출판사에 와서 마지막 최종 원고 데이터를 넘기기 전까지 수정하고 고민했으니 버전 7.6쯤 될 거다.
권당 500페이지의 분량, 거기다가 작가가 들인 공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사실 내 입장에선 권당 12,000원을 매겨도 '훗 내가 독자들을 위해 인심 좀 쓰지'가 옳은 이야기다. <월성연화>가 분명 그 가격 이상의 재미를 줄 수 있다고 나는 믿으니까.
하지만 내가 대인배처럼 그렇게 하지 못하고 9,800원이냐 10,000원이냐를 가지고 고민 한 이유는 내가 장르 출판, 그것도 로맨스 출판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로맨스 출판의 경우 대여점이라는 시장을 무시하고 출판을 할 수는 없다. 대여점과 일반 서점 시장의 비율이 1:2인 파란도 매출의 30-40%에 이르는 대여점을 외면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파란 역시 대여점에 빚진 부분이 있다. 대여점이 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고 로맨스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어쩌면 실험적인 작품들을 낼 수 있기도 했으니까.
문제는 대여점에서 10,000원이라는 가격이 심한 심리적 저항을 준다는 것이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대여점 시장이 책정한 가격은 그렇다. 그래서 몇몇 출판사들은 9,000원을 또 어떤 출판사들은 9,500원을 그리고 어떤 출판사는 9,800원이라는 가격으로 책을 내고 있다. 단순한 심리적 저항이라면 사실 큰일은 아니다. 언제가 포스팅 했던 대로 올해만 종이 가격이 40%정도 올랐기에 그리고 올 8월 1일자로 모조와 아트 계열 종이 값이 또 15% 오르기에 언젠가는 다른 출판사들도 그 저항선을 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내 예측이다. 고수하는 출판사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내가 걱정하는 건 지난 몇 년간 그렇게 9,800원이라는 마지노선이 구축되고 나니까 로맨스 책을 사 보는 독자들도 10,000원이 넘어가는 책을 비싸다고 인식하게 됐다는 점이다. 대여점에 들어가지 않는 판타지, 호러, SF, 추리 등의 다른 장르의 책들이 시장 가격에 맞게 가격을 올리고 그 올린 가격을 통해 책의 질로, 책의 재미로 승부를 하는데 비해 로맨스는 페이지 수와 상관없이, 그 책에 들인 공과 노력에 상관없이, 그 책이 줄 수 있는 이야기의 재미와는 상관없이 10,000원이 넘으면 안 되는 책이라는 인식이 로맨스 독자들에게 공고해졌다. 나는 그 사실이 정말 슬프다.
며칠 전, 몇 권의 SF책을 사면서 씁쓸하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세 권의 책을 카트에 집어넣었는데 세권의 정가를 합한 가격이 51,800원이다. 깜짝 놀라 다시 봤더니 313페이지 책은 17,000원, 365페이지 책은 18,000원, 755P 책은 16,800원. 결국 제일 보고 싶었던 16,800원 책만 주문했다. 책을 산 후 주변 SF 독자들한테 365페이지에 18,000원은 너무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도리어 왜 안 샀냐고 나 보고 뭐라 그런다. 부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사실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아무리 양장이라지만 18,000원은 좀 너무하다 싶긴 했다.)
만약에 내가 36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적어도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도의 재미를 주는 책을, 아니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을 양장본으로 만들어 18,000원을 매겨 시장에 내놓는다면 로맨스 독자들은 뭐라고 할까? 나는 정말 궁금해진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마감 내내 고민했다. 사실 나도 남들처럼 다른 출판사처럼 9,800원을 매겨 내놓으면 된다. 사실 200원이라고 해봐야 서점에 들어가는 실제 공급 가격으로 본다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그리 크게 이익이 남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고민했던 이유는 단지 시장이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장르 출판이 원래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독자들의 책 값에 대한 인식이 고정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남들처럼 9,800원을 매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고정관념 때문에 작가의 값어치를, 책의 값어치를 9,800원이라는 가격에 못 박고 싶지 않았다.
총판에 가서 책 값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고 튀지 말란다. 그러면서 가격을 올릴 가장 좋은 타이밍은 다른 출판사들이 가격을 올릴 때란다. 귀여니 신간도 10,000원을 넘기지 않았단다. 맞는 이야기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다른 출판사에선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시장에서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9,000원 대의 가격으로 내기 위해서는 분명 질 낮은 종이를 쓰던지, 재판을 안 찍을 생각으로 좀 더 질 나쁜 필름을 쓰던지, 아니면 외부 교정을 내부 교정으로 돌리든지, 디자이너에게 아트지에만 맞게 디자인 하라고 하든지,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손해를 강요해야 한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이득이 되는 일은 분명 누군가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책 한권을 쓰기 위해 들어가는 작가의 노력과 마찬가지로 책 한권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편집팀의 노력, 교정팀의 열성, 디자인팀의 창의력을 나는 무시 할 수가 없다. 나는 그들에게 안정된 책값을 위해 조금만 참으라고, 조금만 이해해 달라고, 조금만 창의력을 죽이라고 말 할 수 없다. 나는 그럴 수 없다.
어쩌면 10,000원으로 인상 된 <월성연화>의 책 가격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어쩌면 대여점에서 거부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독자들이 험담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바란다. 파란이 어떤 작가도 예외 없이 보장부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노력에는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기를. 그게 작가의 노력이든, 책의 재미든, 그 무엇이든.
# by 감정의폭주족 | 2008/07/26 00:10 | 로맨스와 나 | 트랙백 | 덧글(29)
2008년 03월 17일
글틴에 보낸 글이 올라왔다.
첫번째 이야기로 로맨스란 무엇인가를 보냈다.
사실 로맨스란 무엇인가라고 거창한 제목을 달아 보냈지만 써놓고도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저 고민하고 고민할 뿐이다
언제가는 로맨스란 이런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날이 오기만을 바란다.
.
http://teen.munjang.or.kr/read/view.asp?pKind=45&pID=29
# by 감정의폭주족 | 2008/03/17 17:44 | 로맨스와 나 | 트랙백 | 덧글(5)
2008년 02월 27일
대한민국 비디오 도서 대여협에서 운영하는 대여점 전문 사이트 오비디오(http://ohvideo.net/)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출판된 로맨스 소설은 무려 총 600여종 900여권에 이른다. 한 달에 최소 70권 이상의 책이 출판된 셈이다. 2007년만 유별나게 많은 소설이 출간된 것일까? 그것도 아닌 것이 위에 이야기한 사이트를 통해 2006년 1월에 출간된 로맨스 소설을 찾아보면 36종에 50권, 2006년 7월의 경우 42종에 60권, 2006년 12월의 경우 51종에 61권이 출판된 것을 알 수 있다. 점차 출간 종수와 권수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이미 2년전부터 최소 월 50권에 달하는 로맨스 소설이 출판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 달에 70권. 로맨스 소설 읽기가 취미인 사람이 하루에 2권을 읽어도 소화하기 힘든 출간 권수다. 읽는 것만으로도 부담인 70권의 출간된 로맨스 소설을 로맨스 독자가 사기 위해서는 모든 소설(최소 정가 9,000원)을 구입한다는 가정 하에 간단한 산수만 해본다고 해도 한 달에 60만원이 넘는 돈을 로맨스 소설 구입에 써야 한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 - 중학교 3학년 교과 과정중 하나다 - 이 맞는다면 70권의 로맨스 소설이 출간되기 위해서는 70권의 로맨스 소설의 수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렬한 로맨스 독자일지라도 나오는 모든 로맨스 소설을 구입하진 않는다. (만약 다 사는 독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킹왕짱-_-b)
그렇다면 출간되는 로맨스 소설의 종수가 줄어야 하는데 어떻게 몇 년 동안 매달 50권 이상의 로맨스 소설이 출간 될 수가 있는 걸까? 설마 로맨스 소설이란 상품만 특별해서 수요공급의 법칙이 무시되는 걸까? 옛말 그른 거 없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바로 그 설마가 맞다. 로맨스 소설이란 상품은 특별한 재화라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
이미 이 글의 첫 문장에서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책이란 상품은 분명 서점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말이다. 한국 로맨스 소설 시장의 현황 자료를 알아보기 위해서 서점이 아닌 대여점협회 사이트를 이용해야만 하는 현실이 2008년 현재 한국 로맨스 소설이 처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처음부터 로맨스 소설 시장이 지금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2000년 국내 로맨스 소설 출판이 시작 된 후 4년여는 출간 종수가 월 10종을 넘지 않았다. 그리고 판매 부수 역시 지금과는 달랐다. 그때도 대여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여점에 공급되는 부수와 일반 독자에게 팔리는 부수가 비슷하거나 일반 독자를 통한 판매가 대여점 판매를 앞섰다. 지금도 명작으로 기억되는 <공녀>, <천사와 사랑을>의 초판부수는 2500권 정도였다. 초기에 대여점 공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여점 공급 이후에는 대부분이 일반 서점을 통해 팔렸다. <공녀>의 경우 1년 만에 10쇄, <천사와 사랑을>의 경우 6쇄.
하지만 2004년 후반기 무협과 판타지를 출판하는 장르 출판사들이 로맨스 출판에 손을 대면서부터 시작된, 로맨스 소설의 대여점 정착이라는 시스템은 로맨스 소설 시장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모든 변화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대여점 체제가 가져 온 긍정적인 측면은 로맨스 소설의 외연이 확대 되었다는 점이다. 장르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더 새로운 이야기, 더 다양한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한다. 로맨스 소설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로맨스 소설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는 모든 로맨스 소설이 거기서 거기인, 뻔하디 뻔한 사랑타령이겠지만 로맨스 소설 독자들이 보기에는 이야기마다 다른 새로운 이야기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던 것처럼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 보다 수십, 수백, 수천 명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서로 다른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독자들을 찾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독자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이야기들을 골라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게 가능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수의 독자에게 파는 것보다 손실 규모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대여점이라는 안전판이 있음으로 인해 로맨스 출판을 하는 출판사들이 다음 로맨스 소설을 출간 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대여점이 있기에 로맨스 출판사들이 꾸준하게 로맨스 소설들을 출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이 불러 온 이야기의 새로움은 채 1년을 가지 못했다.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대두되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이야기, 더 다양한 이야기를 원한 독자들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재미있는 새로운 이야기, 재미있는 다양한 이야기였지만 이런 독자들의 욕구를 출판사가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이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여점 체제가 판매부수의 고착화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현재 로맨스 소설의 초판 부수가 3000부라고 치면 (이것도 많이 잡은 수치다. 인정부수라고 해서 초판 3,000부 이상을 계약하는 작가들이 있지만 실제 초판을 인쇄하는 부수가 3,000부를 넘는 작가는 극히 드물다. 인정부수에 대해서는 참으로 할 이야기가 많지만 그건 다음에-_-) 출판되는 로맨스 소설 초판부수의 대부분이 대여점에 팔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몇몇 출판사들은 개인 독자들에게만 책을 팔아서는 출판사의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도 대여점에 팔리는 부수보다 일반 서점을 통해 팔리는 부수가 더 많은 로맨스 소설이 있다. 물론 그런 로맨스 소설의 종수는 극히 적다. 2007년에 출간 된 600여종의 작품 중 그런 경우는 최대 5%가 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심하게 이야기 하자면 10종이 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슬프게도 몇몇 출판사들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맞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슬픈일이다. 그건 출간되는 로맨스 소설의 95%가 대여점에 들어가는 부수 플러스 알파라는 태생적인 한계부수를 가지고 출판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보면 현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은 판매부수의 고착화를 불러 온 대여점에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 상황의 책임의 50% 이상은 분명 대여점보다 무분별한 출판을 하는 몇몇 출판사에게 있다. 이들은 손실 규모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대여점이라는 안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을 대상으로 책을 만들지 않고 대여점 판매를 목적으로 책을 만들었다.
새로운 소재를 다룬 소설이 재미를 주기란 쉽지 않다. 독자들이 원하는 재미있는 새로운 이야기, 재미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작가의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그만큼의 공을 들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여점 체제라는 안정적인 시장에 대해 눈을 떠버린 몇몇 출판사들은 일정부분 판매 부수가 보장되어 있는 로맨스 시장에 대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좋은 작품을 써낼 능력이 있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충분한 습작 기간을 보내지 않은 원고들, 작가 스스로에게 충분히 숙성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무분별하게 출판했다. 단지 좀 더 많은 책들을 대여점에 공급하기 위해서.
그들은 권당 이익 얼마라는 커트라인을 정해놓고 기본적인 맞춤법을 지키지 않는 글과 오문과 비문으로 이루어진 문장, 개연성이 없는 스토리를 가진 이야기들을 로맨스 소설이라는 포장 하에 내 놓았을 뿐이다. 물론 안정적인 판매루트가 있는 상황에서 모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로맨스 소설을 출판하는 로맨스 출판사들이 정말 독자들과의 로맨스를 꿈꿨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출판사들도 변명을 할 순 있을 것이다. 판매부수가 한정 지어진 책을 만들기 위해서 금전적 시간적 노력을 들이는 짓은 미련한 짓이라고. 또한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감각으로 책을 만들어 보았자 대여점에서 반품되어 오거나 그냥저냥 만든 책에 비해서 판매부수가 떨어진다고, 그러니 그런 책을 낼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결국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독자가 아닌 대여점을 대상으로 책을 만들기 때문에 오는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결국 악순환이다. 새로운 독자층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독자들에게 익숙한 소재들만 골라서, 그것도 최소한의 노력으로만 책을 내는 출판사들과 새로운 독자층을 위해서 만든 책들을 외면하는 대여점들과 독자들이 만드는 악순환.
지금 현 시장에서 독자들이 책을 사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구매 의욕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70권의 책들 중 어느 책이 정말 좋은 책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사보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책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들은 구매의욕을 잃어 버렸고 점차 9,000원을 투자하는 것보다 대여를 위한 900원을 소비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900원의 소비마저 아까워하고 있다. 초창기 대여점에 들어갔던 로맨스 소설의 대여 회수가 평균 40회인데 비해 현재 로맨스 소설의 대여 회수는 평균 10회 미만이다. 결국 대여점들도 점차 로맨스를 외면하고 있다. (책을 다 사는 로맨스 독자가 킹왕짱이라면 나오는 모든 로맨스를 들여놓는 대여점 역시 킹왕짱-_-b이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방법 밖에 없다. 바로 제대로 책을 만드는 일이다. 대여점에서도 찾고 독자들도 찾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로맨스 출판사들이 정말 로맨스 소설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 로맨스 소설과 대여점과 독자들이 공존하는 꿈을 꾸고 있다면, 정말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누가 봐도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 누가 봐도 사고 싶은 로맨스 소설을 만들어야 한다. 정말 그렇게 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깨진 꿈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깨진 파편 앞에서 울고 있는 것은 작가와 독자들 뿐일 것이다.
P.S : 이 글은 100℃라는 문화지에 청탁을 받고 쓴 글이다. 유감스럽게도 <로맨스 출판사들은 정말 로맨스에 대한 꿈을 꾸는가? >라는 제목이 그쪽 편집부에 의해 <겉은 화려하나 속은 텅빈 로맨스 소설>이란 제목으로 나갔다. -_- 편집부의 허락을 얻어 블로그에 다시 싣는다. 원고분량 문제로 미처 이야기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추가되었다.
# by 감정의폭주족 | 2008/02/27 17:24 | 로맨스와 나 | 트랙백 | 덧글(14)
2007년 08월 16일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전2권)(정은궐/파란/각권 9,000원)
유교와 당쟁과 성균관유생들을 소재로 한 무겁고 딱딱해질 수 있는 역사 이야기에 연애담이 어울릴 수 있을까? 정은궐은 그게 가능 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녀는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 시대에 대한 깊은 고민, 사서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고증, 그 시대의 사상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을 더한 다음 그 모든 이야기들을 슬렁슬렁 잘 읽히지만 깔끔하고 흠잡을 데 없는 문장으로 씨줄과 날줄을 짰다. 그리고 연애담을 은근 슬쩍 집어넣는다. 그것도 조선시대판 ‘엄마친구아들’인 남자주인공과 병약한 남동생 대신 남장하고 과거를 보게 된 여자주인공의 연애담을. 가히 그 솜씨는 임방울이 쑥대머리를 부르거나 이매방이 살풀이를 추는 것엔 못 미칠지 모르지만 그것에 버금간다. 우린 때로 살아가면서 읽는 내내 행복해지고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그런 글을 만날 때가 있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실연 세탁소 (문지효/이가서/9,500원)
리쌍의 노래처럼 죽을 때까지 사랑만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때로 사랑은 아픔을 낳는다. 사랑이 사람을 배반하거나 사람이 사랑을 배반한다. 사랑이 끝까지 가지 못하고 사랑이 식거나 실연을 당할 때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지난 사랑을 되새긴다. 가장 슬픈 일은 지나간 실연 때문에 또 다른 인연을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실연세탁소는 그런 이별을, 실연을, 아픔을 치유하고 차분하게 세탁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평상에 누워 별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거나 지나간 댄스곡을 흥얼거리며 실연의 상처를 조금씩 이겨내 가는 소근과 그런 소근의 우울한 옆모습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 슬픈 모습을 자신이 가져갔으니 앞으로는 그녀가 웃기만을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은우를 통해 모든 사랑의 상처는 치유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나간 사랑의 상처가 아직도 당신을 울릴 때 이제는 희미해진 옛사랑이 발목을 자꾸만 잡을 때 읽어야 할 책.
연록흔(전5권) (한수영/마야/각권 9,800원)
황제의 보물을 훔친 죄로 참수될 위기에 처한 아버지의 목숨을 평생의 자유와 맞바꾼 남장소녀 연록흔과 그녀가 호위해야만 하는 황룡국의 천자 가륜이 겪는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들. 김용이 신조협려를 통해 ‘정이란 무엇이기에 생사를 가늠하느뇨’라고 무협에 로맨스를 끌어왔다면 한수영은 고대 중국과 한국을 연상시키는 가상 왕국 황룡국과 가장 완벽한 남자주인공 가륜을 주인공으로 국내 최초로 로맨스에 무협이라는 다른 장르를 이끌어 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랑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드러낼 수 없는 괴로움이 흘러간다. 누군가를 멍하니 바라만 봐야 하는 감정이 얼마나 쓰린지 안다면 그러나 그 사랑을 이루었을 때 가질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
연우 (서누/파란/12,000원)
'연우(煙雨)'란, 안개같이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를 일컫는 말이다. 작가는 제목 그대로 시계제로, 앞이 보이지 않는 그러나 어쩌면 가늠 할 수 있는 질문을 로맨스라는 장르를 통해 진지하게 던진다. 사랑이 사상보다 중요한가? 사랑이 혁명보다 중요한가? 아니 신에 대한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각각의 해답을 위해 작가는 울산의 치술령 자락, 어느 일본인이 식민시대에 남긴 저택 안에 한 여자와 한 남자를 고립시킨다. 여자는 친일 자본가의 딸, 동경 사교계에서 '하나(花)'라 칭송받던 남쪽 여인이고 남자는 지하당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북에서 남파되었다가 낙오한 열일곱살 인민군 소년 장교다. 로맨스의 공식대로 고립된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 둘 사이엔 사상과 혁명 신이라는 장애물이 있다. 거기에 둘에게 6.25라는 거대한 민족의 비극이 다가온다. 작가는 던진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않는다. 물론 정답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어쩌면 그렇다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연의 바다(전3권)(이리리/신영/각권 9,000원)
연의 바다가 그려내는 로맨스의 세계는 장엄하고 광대하다. 이리리는 사람들이 로맨스를 읽음으로서 얻고 싶어 하는 욕구를 연의 바다를 통해 모두 충족시켜준다. 우리가 어렸을 때 열광했던 김동화의 아카시아나 이케다 리요코의 올훼스의 창을 보고 느꼈던 그 감동들을. 그 감동은 장대한 스케일에서도 나오지만 정밀한 시계태엽 마냥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성과 그 구성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고대 이집트에 대한 세밀한 묘사의 힘에서 나온다. 여주인공 연하가 새로이 눈을 떴을 때 고대 이집트 파라오 토드모세라는 운명적인 상대를 만났듯이 분명 어딘가에 있다. 운명적인 내 사랑이. 비록 지금 이곳은 아닐지라도.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고 어딘가 정말 내 운명의 사랑이 있다고 믿는 당신이라면 절대로 이 책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인생미학 (정이원/신영미디어/9,000원)
한 남자가 있고 한 여자가 있다. 둘이 만나 사랑을 한다. 로맨스라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서른 살 생일 또 하나의 단순한 ‘연애’를 끝내고 사랑이란 뭘까? 어떤 감정일까? 를 궁금해 하는 한 남자와 지내던 장애 복지원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열아홉 살 눈 먼 소녀가 만나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남자는 누구나 인정하는 엘리트지만 사랑이라는 걸 절대로 믿지 않고 여자는 언제 죽을지 모를 병을 가지고 있는데도? 현실에선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이지만 정이원의 손끝에선 둘의 사랑이 정말 마술같이 이루어진다. 그것도 해피엔딩으로. 지친 스스로를 치유해 줄 수 있는 동화같은 로맨스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는 책.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한국식 로맨스로 아름답게 변주한 이야기다.
# by 감정의폭주족 | 2007/08/16 11:49 | 로맨스와 나 | 트랙백 | 덧글(6)
2007년 08월 14일
꿈을 꾼다. 그대는.
이루어 질 수 없기에 아름답고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달콤한 꿈을.
누군가를 만나고 좋아하고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그런 꿈을.
그러나 희망은 단지 희망. 현실은 잔혹하다. 현실엔 잃어버린 신발을 들고 찾아 올 멋진 왕자님도, 야근과 직장상사와 매달 날아드는 카드명세서로부터 그대를 구해줄 기사도, 그대만을 바라보고 그대를 기다려 줄 어느 화창한 봄날 만나게 될 100%의 여자아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루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내고 조금 더 힘을 내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그 순간이 지나면 당신은 더 이상 꿈꾸기를 멈추고 당신을 핍박하는 현실에 체념어린 한숨을 내쉬게 된다. 점점 꿈꾸기를 잊게 된다. 꿈꾸는 게 지겨워진다. 그래도 만약 당신이 조금 더 꿈을 꾸고 싶다면, 이대로 그 꿈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그 꿈을 꾸기 위해 뭔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대여, 내가 이야기 해주는 완벽하고 사랑스러운 10편의 로맨스 소설을 읽으시길.
그 이야기들 속에는 잔혹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언젠간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과, 어떠한 고난도 결국에는 이겨 낼 수 있을 거라는 용기와, 남루하고 지겨운 일상을 참고 살아낼 수 있는 따듯한 손길이 담겨있으니까.
그리고 만약 당신의 나의 충고를 받아들여 10편 중 단 1편이라도 끄집어 내 읽는다면 그 순간 당신은 알게 된다. 그 책들 안에 당신이 힘들 때 당신에게 위로가 되었던, 당신이 괴로워 할 때 당신에게 따뜻한 힘이 되어 주었던, 당신이 즐거울 때 같이 즐거워했던 당신의 과거의 현재의 미래의 연인들이 모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같이 울고 웃고 즐거워하고 행복해 했던 행복해 할 기억들이 거기 모두 녹아있다는 걸.
그러니 그대 부디, 이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천일야화 같은 10편의 로맨스 소설로 모든 걸 잊고 달콤한 한 때를 보내시길. 다시 한 번 꿈을 꾸시길.
가스라기(전 3권) (진산.민해연/시공사/각권 9,000원)
민해연의 글은 사람을 중독 시킨다. 그 중독성은 너무 강해 때로 읽는 사람의 이성과 마음을 마비시킨다. 톨킨이 북구신화를 바탕으로 중간계를 만든 것처럼 민해연은 한중일 3국의 전설과 민담을 ‘삼라’라는 새로운 세계로 다시 그려냈다. 그 ‘삼라’는 소름끼칠 정도로 정교하고 그의 글만큼이나 아름답다. 어딘가 현실에 존재할 것만 같은 세계. 물론 정교한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만으로 가스라기를 최고의 판타지 로맨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선인 ‘천군’과 하늘과 땅 모두에게 버림받은 인간 ‘가스라기’ 그리고 천군의 배다른 동생 '지한'의 삼각관계를 축으로 한 이야기만으로도 가스라기는 꼭 읽어야 할 로맨스 첫 번째 목록에 위치한다. 거기에 동양적 판타지, 무협적 서사가 맞물려 있다. 그리고 완전한 사랑도.
어쩌면 지은이는 한국 로맨스가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먼저 발을 내딛었는지도 모르겠다.
각의 유희(전 2권) (가선/영언/각권 7,500원)
그런 소설들이 있다. 읽는 내내 가슴을 조여가며 주인공들의 심리를 쫓다보면 어느새 내가 주인공이 되어 주인공이 웃으면 웃고 울면 같이 울게 되는 소설이. 그런 작가들이 있다. 그 강렬함에 취하고 서글픔에 시름겨워하고 독한 담배 연기 혹은 진한 커피 향에 취한 것 마냥 읽는 내내 몽롱해지는 글을 쓰는 작가들이. 각의 유희가 그런 소설이고 가선이 바로 그런 작가다. 가선은 가장 강렬한 로맨스를 쓰는 작가답게 고르디오스의 매듭처럼 엉킨 애증과 복수를 각의 유희에서 펼친다. 그리고 알렉산더가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단 칼에 끊듯이 두 주인공 이혁과 은소를 통해 사람들이 가선에게 열광하는 그 지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건 바로 사랑에는 대체물이 없다는 것. 단지 그 하나만 보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오래 만나지 않아도 단지 눈빛 몇 번만 스쳤어도 서로에게 증오한다고 말해도 사랑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비늘(전2권) (이선미/파란/각권 9,000원)
커피프린스 1호점과 경성스캔들로 이미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선미는 두말 할 나위없는 대한민국 로맨스장르의 대표 작가다. 대표 작가답게 이선미의 모든 글들은 재미있다. 그리고 그 재미는 어떠한 상황과 조건이더라도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작가의 필력에 기인한다. 하지만 비늘의 재미는 우리가 로맨스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재미와는 다르다. 로맨스란 당연히 달콤하고 달달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늘은 충격을 준다. 비늘은 독하다. 너무나 독하고 독해 다크 초콜릿99%를 먹다가 목이 막히는 느낌이다. 비늘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아름답거나 행복하지 않다. 인간의 광기와 욕망이 어우러져 지옥도를 그려낸다. 하지만 그 지옥도에서 비늘의 재미가 나온다. 왜냐하면 때론 그런 독함이 사랑의 상처나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하니까. 사랑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니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북박스/9,000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정갈하다. 하지만 프렌치 레스토랑이나 상견례를 목적으로 하는 고급 한정식 집의 정갈함과는 다르다. 이 정갈함은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차려주는 소담한 밥상 같은 느낌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먹으면 분명 맛있을 음식. 또한 곱게 부친 전 하나마다 스며있을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밥상.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는다는 건 어머니가 정성스레 차려주신 밥상을 한상 받는 것과 같다. 그 힘은 로맨스 작가 중 세 손가락에 꼽히는 작가의 문장력에서도 나오지만 무엇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지은이의 따듯한 시선에서 온다. 한번쯤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래도 다시 한 번 사랑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소소한 일상의 사랑이 더 아름답다 느끼는 사람이라면 언제고 꼭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 by 감정의폭주족 | 2007/08/14 16:42 | 로맨스와 나 | 트랙백 | 덧글(11)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